[충청매일] 미리 채워주지 말자 | |
[2023. 12. 07.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배명순의 the 생각해보기]
어디에서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고 하고, 또 어디에서는 "귀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들어라"고 한다. 자녀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라고도 하고, 또 너무 많이 채워주면 안 된다고도 말한다.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하는 것일까? 자녀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마음. 예나 지금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매한가지 같다. 필자는 어려서 갖고 싶은 것들(자전거, 장난감, 운동화 등)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가끔 명절 밑 시장에서 사온 기름 냄새나는 새 옷이 전부다. 이런 부족함에 대한 경험 때문인지 자녀들에게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무언가 사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도 않는다. 큰맘 먹고 사준 시리즈 교양서적, 수영복, 자전거 등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할 때는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몇 장 들춰보지 않은 책을 봤을 때는 ‘다시는 사주지 말자’라고 다짐하는 삐진 마음이 든다. 요즘 시대는 돈이 없어서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이 채워주기 때문에 탈이 난다. 가고 싶지 않은 학원을 가야하고,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며, 당기지 않는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한다. 부모로서는 부족함 없이, 아니 부족하기 전에 미리 채워주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들! 몸에 좋은 버섯을 왜 안 먹는 거야! 이게 얼마나 좋은 건데. 우리 어릴 때는 없어서 못 먹었어!’라고 라떼(나때) 잔소리를 하고, 아들은 짜증을 낸다. 자녀의 필요를 미리미리 채워주는 것, 잘하는 것일까? 심리상담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채워지지 않는 결핍도 문제지만, 지나치거나 강요에 의한 채워짐이 더 큰 문제라고 한다. 강제로 채워짐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반항하게 되는데, 이때의 반항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평소에 먹던 음식을 싫다고 하거나 가족 회식에 함께 가지 않는 방식으로 표출한다. 부모는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갈등을 겪는다. 자녀는 짜증이 나지만, 그 짜증의 이유를 정당하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부모가 나 잘되라고 사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짜증을 내는 자신을 나쁜 사람은 아닐까 의심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이런 자책은 다시 짜증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지 못한 부모의 탓이다. 필요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필요하다고 요청이 들어올 때 해줘야 받는 자녀의 만족도와 부모한테 수용 받았다는 마음이 더 커진다는 것을 부모들은 이해해야 한다. 이번 주말, 아들의 취향을 모른 채 예매한 오페라 공연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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