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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부담스러운 시대 - 충북이 만들어갈 ‘공동체’ 새글핫이슈
기고자 : 박민정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리뷰 게시일 : 2025.11.26 조회수 : 158

[2025. 11. 26. 발간]

[충청매일 - 칼럼 - 박민정의 함께 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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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마찬가지다. 청주 원룸촌에는 혼자 사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읍면 지역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많아졌다.


30년 전만 해도 달랐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어머니는 집에서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다. 명절이면 대가족이 모였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족이 먼저 나섰다. 국가가 챙겨주지 못하는 복지를 가족이 떠안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가 모든 걸 바꿔놨다. 대기업 부장이던 옆집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고, 평생직장이란 말은 옛말이 됐다. 지금 20~30대는 어떤가. 취업도 어렵고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결혼하면 자녀 양육비에 교육비까지, 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모험'처럼 느껴진다.


가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청주에서 만난 32살 직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요? 하고 싶죠. 근데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애 낳아서 어떻게 키워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덜 불안해요.“


이런 청년들의 선택을 단순히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은 흥미로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면 동물들도 자식을 덜 낳는다"는 것이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서식지가 불안정하면,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번식을 줄인다. 무작정 많이 낳는 것보다 조금 낳아서 제대로 키우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아는 거다.


우리 청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비정규직이 늘고, 전세 사기가 판치고, 아이 하나 키우는데 월 백만 원이 넘게 드는 세상. 이런 불안한 환경에서 "결혼해라, 애 낳아라"고 외치는 건 동물의 본능마저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다. 청년들이 안심하고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먼저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 없이 살아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요즘 청주 복대동에는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 비혼 여성 3명이 한 집에 모여 산다.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의 비상연락처이고, 아플 때 죽을 끓여주는 사이다. 옥천의 한 마을에선 독거노인 5명이 매일 저녁을 함께 먹는다. 김장도 같이 하고, 병원 갈 때도 동행한다.


이들은 혈연은 아니지만 서로를 돌본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준다. 이게 바로 새로운 가족의 모습 아닐까. 가족을 '누구'로 규정하지 말고 '무엇을 하는가'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충북, 작은 변화들


그럼 충북은 뭘 해야 할까. 먼저,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1인 가구를 위한 공동 부엌이나 빨래방 같은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음성군에서 시작한 '함께 밥상' 프로그램처럼, 혼자여도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돌봄을 가족에게만 떠넘기지 말자. 제천시가 운영하는 '틈새 돌봄 서비스'처럼, 잠깐이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있으면 부모의 숨통이 트인다. 충북 전역에 이런 촘촘한 돌봄 그물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주자. 동거 커플도, 한부모 가족도, 조손 가정도 모두 우리 이웃이다. 그들이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충북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직장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동물들도 환경이 안전해야 새끼를 낳듯이, 청년들도 삶이 예측 가능해야 가족을 꿈꿀 수 있다.


인공지능이 대화 상대가 되고, 로봇이 돌봄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의 온기를 대신할 순 없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요즘, 오히려 서로를 챙기는 관계가 더 소중하다.


충북이 꿈꾸는 미래는 거창한 게 아니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함께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곳.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를 가족처럼 아끼는 곳. 그런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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