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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충북 최초 갤러리 역할을 한 충북미술공사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8.20 조회수 : 1

[2025. 08. 20.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47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규모가 큰 전시를 위해 학교 강당이 활용되었다면, 좀 더 전문적인 미술인은 ‘모던한 건물’로 주목받았던 청주금융조합(1926)과 충북도청과 인접한 산업장려관(1936)을 활용했다.

 청주금융조합에서 전시회를 연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본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청주로 건너와 청주공립보통학교의 미술 교사로 재직했던 목야정일(牧野精一, 杉谷精一)이 있다. 그는 1933년과 1934년의 11월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주소지를 충북으로 해서 조선미술전람회(조선미전) 제12회(1933)에서 15회(1936)까지 서양화 부분에서 한 점에서 세 점까지 내리 입선작을 냈고, 특선도 한 차례 했다. 그의 아내 삼곡비좌(杉谷緋佐)도 12, 14, 15회 서양화 부분에서 입선했다. 해마다 5월이면 조선미전 심사 결과 발표로 지방까지 떠들썩했으니, 당시에는 이들 부부가 지역 미술계의 ‘셀럽’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람회 도록으로 확인되는 목야정일의 작품에는 청주의 낯익은 풍경이 어른거린다. 1934년 입선작 중에는 청주 중앙공원 압각수(공손수, 公孫樹)를 그린 것도 있다. 

 1936년 12월 산업장려관이 개관하자, 그 2층이 이러한 전시 기능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사례를 들어보면, 1937년 12월에는 도자기로 유명했던 청원 ‘강외요업조합’이 마련한 도자기 전시회와 즉석 판매 행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개인 전시회를 연 인물로는 청주 출신의 ‘천재 화가’로 불린 송정훈(1915∼1981)이 있는데, 1938년 5월 이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화가 이중섭의 절친이기도 했던, 그는 당시 언론에 ‘기행화첩’을 연재해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16회(1937)를 시작으로 19회(1940), 23회(1944) 조선미전 서양화 부분에서 입선한 사실도 확인된다. 1939년 7월에는 이곳에서 ‘회원전’도 열린다. 지역 최초의 화가들 모임으로 추정되는, 청주의 청년 예술가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청미회’가 이곳에서 그룹전을 연 것이다. 

 작품 전시 ‘공간’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1929년 6월 무렵 갤러리(화랑)의 전신에 해당하는 ‘충북미술공사’가 청주에 문을 연 사실이다. 공익적 기능에 충실한 미술관과 달리 화랑은 전시와 더불어 상업적 유통을 겸한다. 청주의 하상낙, 구연달이 부산 출신으로 일본에서 미술학교를 나온 김학성을 초빙해 와서 미술공사(美術工舍)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주로 서양화, 초상화, 산수화 등을 판매했는데, 특히 초상화 주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그해 가을에는 충북 보은에 지사도 설치했다.

 이에 비추어 1929년 무렵에는 지역에서도 서양화를 포함한 ‘그림’ 유통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림의 대상도, 그림을 대하는 인식도 달라졌다. 이제 초상화는 고관대작의 권위나 제사 의례의 영적 상징에서 벗어나 일상 가까이에서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기호품’이 된 것이다. 

  이 미술공사가 언제까지 존속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충북에 화랑 시대를 연 것은 1982년 12월 18일 개관한 청주의 ‘청탑화랑’이었다. 1987년 황실화랑을 거쳐 1990년 9월에는 무심갤러리가 개관, 충북 미술을 살찌운 갤러리의 시대가 펼쳐진다. 이 화랑史의 서막을 여는 자리에 1929년의 이 충북미술공사를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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