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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충북 최초의 근대 회화와 미술 전시회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7.23 조회수 : 10

[2025. 07. 23.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41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1910년대 들어서 보통교육의 확산과 함께 충북에서도 미술교육이 자리를 잡아가는 사정은 1913년 매일신보 ‘학계 화보’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해 3월부터 6월까지 전국의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현재의 중학) 학생 작품을 거의 매일 한 편씩 소개하고 있는데, 모두 82편으로 집계된다. 여기에는 단연 동양화풍이 많고, 일부 서양화와 디자인 계열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제출자의 성명과 소속 교명 판독이 가능한 것은 48편인데, 충북에 소재한 학교 학생들 작품은 총 13편이다. 서울 평양 등 내로라하는 지역의 학교가 망라된 만큼 적지 않은 비중이라 할 수 있다. 1913년의 신문 지상에 소개된 이 그림들이 근대기 이후,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충북인 최초의 그림이 아닐까 한다.

 13점의 작품을 실은 충북의 학교는 청주에 소재한 청주공립보통학교(5편)와 충북 최초 여학교에 해당하는 청주사립보성여학교(5편), 그리고, 충주의 충주공립보통학교(3편)다. 주목할 점은 두 개 공립학교 학생들 그림은 모두 동양화풍을, 청주의 사립여학교 학생들 그림은 서양화풍을 띤다는 점이다. 동양화들은 그 소재를 우리가 전통적으로 봐왔던 산수나 새, 새우, 꽃 등으로 하고 있는데 그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반면에 서양화는 ‘정물화’의 밑(기초)그림에 해당하는, 선묘 위주의 ‘데생’이다. 모두 하나의 특정 정물을 전경화한 것인데, 오브제로 익숙한 목탁도 있지만, 시대상을 반영한 새로운 것도 있다. 그중에는 학생복 제모(制帽)와 같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사물의 이름을 알기 어려운 것도 있다. 물론, 1910년대만 해도 그림에 제목을 붙이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데에도 이유도 있다. 

 학생들이 그린 동서양화 작품에는 현격한 수준 차이가 있다. 이는 학교마다 달랐던 미술교육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191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지역에 ‘서양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술의 정착 과정에서 이러한 제도권 내의 학교 교육과 더불어 좀 더 광범위한 계층을 대상에 교육 기능을 담당한 것은 ‘전람회’로 불렸던 ‘전시회’였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본보기를 다수의 대중에 공개하는 이 방식은, 근대로의 이행기에서 굳이 미술 영역뿐만 아니라 산업과 문화 전 영역에서 가장 효과적인 계몽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도내 최초의 미술전람회는 언제 어디,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을까. 1916년 2월 초, 청주 성안길 내 요릿집 ‘청주관’에서 일주일간 진행되었던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 1855∼1921)의 ‘蘭畵(사군자 중의 난초 그림) 전시회’로 확인된다. 김응원은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대원군의 하인으로 일하면서 묵란 화풍을 익히고 스스로 경지를 개척, 당대 최고 난초 화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전시회에서는 휘호 시연과 함께 현장에서 그린 200여 점의 작품 판매도 이루어졌다. 이 난화 전시회가 현재 기록상(매일신보, 1916.2.15.)으로 확인되는, 전시와 판매를 겸한 지역 최초의 미술 전시회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양화 전시회는 이보다 3년이 늦은 1919년 6월에 비로소 시작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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