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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충북의 근대교육과 미술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7.09 조회수 : 5

[2025. 07. 09.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39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근대미술은 낯선 양식이었던 만큼 ‘배움’의 과정이 필요했고, ‘교육’과는 불가분 관계에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소학교령이 발표된 1895년을 경계로 충주와 청주를 중심으로 근대적 공교육이 시작된다. 근대교육에 대한 열망은 비단 공립학교뿐 아니라 지역 선각자들이 주동이 된 사립학교 설립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을 전후한 시기, 기울어가는 국운을 되돌리기 위해서 ‘교육’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이 사립학교 설립은 일제의 통감부 설치 후 學部에서 ‘보통학교령’(1906)을 발표하고, 이 칙령에 따라 각 지역 공립학교가 확대한 데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립학교가 ‘보호정치’ 하에서 공립이 소홀히 한 민족 교육, 교육 구국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지역에서도 공립교육이 시작된 충주와 청주는 물론이고, 도내 전 지역에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사립학교들이 문을 연다. 

 1904년 11월에 개교, 지역 첫 사립학교로 알려진 광남(청남)학교 외에도 당시 언론에는 이보다 앞선 ‘청주사립일어학교’(1904.5)를 필두로 괴산의 시안학교(1905.8), 청주 청호학교(1905.8→1906.10 ‘충북보성중학’으로 재개교), 진천의 광명(1905.10) 및 문명학교(1906.5), 음성의 광명학교(1906.1 이전), 충주의 돈명(1906.4) 및 찬명학교(1907.10 이전), 옥천의 광동(1906.3→1906.6 仁明·光明學校로 개명) 및 진명학교(1906.8), 영동의 황간공립(1906.3)·덕명(1906.11)·사립계산학교(1908.4), 일찍이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졸업생을 배출한 제천의 사립보흥(창명)학교(1906.4), 단양의 益明학교(1906.10)까지 충북 전 지역에서 1904∼6년에 근대교육의 출발을 보게 된다. 교명에는 유독 ‘光과 明’이 많이 등장하는데, 반식민지 암울한 상황에서 인재 육성을 통해 조선의 미래를 밝히고자 한 지역 선각자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이들 학교에서 가르친 교과목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황성신문’에 청주 충북보성중학(1906∼1910) 수업과목이 공개되어 있는데 여기에 도화가 포함되어 있다(1906.9.25일자). 지역 교육사에서 확인되는 미술 교과목 수용의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선각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병탄을 당했다. 1911년 ‘조선교육령’ 발표 이후의 강점기 교육은 ‘황민화’가 그 요체였다. 미술교육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역에서도 미술교육을 담당하는 주체가 일본 사범(미술)학교 출신의 일본인 교사들로 바뀐다. 1922년 1회를 시작으로 미술계의 가장 큰 이벤트가 되었던 조선미술전람회에 충북을 ‘대표’해서 입선하고, 지역에서 전시회를 주도했던 이들 대부분은 이 일본인 교사들이었다. 전통 교습에서 일본에 수용된 서구적인 교육 방식으로, 미술(교육)에서의 주 장르도 전통 회화에서 서양화로 바뀐다. 1910년대 이광수를 비롯한 일본 유학파들은 조선의 전통문화를 혁신의 대상으로 규정했고, ‘조선의 회화 역시 오브제가 다양하지 못하므로 신선하면서도 당대의 생활과 관련된 장면들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회적 담론과도 맞물리면서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점차 위축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변화의 과정을 1910년대 우리 지역 학생들이 ‘매일신보’ 등에 투고한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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