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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충북 근대미술의 출발과 미술교육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6.25 조회수 : 6

[2025. 06. 25.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37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좀 더 지역적인 관점에서 충북 근대미술의 도입기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참고할 만한 선행 연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각종 언론, 관보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지역 미술사를 엮어본다. 파편적 논의가 되겠지만,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도 공백 없는 미술사의 퍼즐이 맞춰지기를 기대한다.

근대로의 전환기에서 미술은 낯선 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배움’의 과정이 요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북 지역 미술교육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단서를 찾기 위해서는 한국 근대교육의 도입과 정착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근대교육은 갑오개혁(1894)의 일환으로, 1895년 7월 칙령으로 발표된 ‘소학교령’에 따라 서울의 관립소학교, 충주를 비롯한 전국 각 관찰부 소재지의 공립소학교, 그리고 청주군을 비롯한 일정 규모를 갖춘 도시에 學部(지금의 교육부) 지정, 공립소학교가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충북 지역의 초등교육 역시 이 소학교령에 따라 설치된 ‘충주공립소학교’(현, 충주 교현초)와 ‘청주군공립소학교’(현, 청주 주성초)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으며, 두 학교 모두 설치(개교) 일자를 칙령 발표 이듬해인 1896년, 9월 17일로 하고 있다. 이는 학부가 부령 5호로 <지방 공립소학교 위치를 정함>을 공표한 날짜에 해당한다. 그런데, 청주의 초등 설치 시기는 학부가 지정한 해인 1896년이 맞지만, 충주 쪽은 확인이 필요하다. ‘대한제국관보’나 ‘승정원일기’ 등에서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충주공립소학교’ 설치 시점 이전(1896.1.29.∼1896.9.15.)에 이미 이 학교의 교원 임면(任免) 기록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관학’ 부분 설명대로 관찰부(당시 23부제)가 있던 충주의 소학교 설치 시기는 1895년이거나, 늦어도 1896년 1월로 추정된다. 이는 충북 근대교육의 始原과 관련된 사항이므로 면밀한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

소학교령에서는 학교 편제를 3년제의 심상과와 2,3년제의 고등과로 나누었다. 이 심상과의 지정 교과목 중 미술과의 서예에 해당하는 ‘습자(習字)’는 필수과목, ‘도화’(회화)는 선택과목이었다. 고등과에서는 도화가 필수였지만, 소학교령 공포 후 10년 동안 지방에서는 고등과를 갖춘 소학교가 없었다. 따라서 충주와 청주 두 공립소학교의 도화 과목 채택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미술교육이 좀 더 보편화되는 시기는 통감부 설치 이듬해인 1906년 8월, 칙령으로 발표된 ‘보통학교령’ 이후라 할 수 있다. 칙령에 따라 기존의 소학교도 보통학교 체제로 전환되었고, 심상과와 고등과가 하나로 통합되었으며 도화(미술)는 필수과목이 되었다. 공예에 해당하는 ‘수예’는 여학생에게만 필수과목으로 추가되었고, 수공(手工)은 선택과목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이듬해인 1911년에 발표한, 제1차 조선교육령에 와서 도화는 다시 선택과목이 되었고, 남학생에게는 수공이 필수가 된다. 그러다가 1920년 11월 ‘조선교육령’ 개정을 통해 도화 과목은 정식과목으로 환원되었고, 해방 시기까지 그 근간을 유지하게 된다.

여하튼, 보통학교 시기 이후 충북 지역 학교에도 도화(수예) 교사가 배치되기 시작해, 미술교육을 비롯해 전람회 출품, 전시회 개최 등으로 지역 미술의 정착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10년대 초반부터는 학생들에게도 미술이 정착돼 가고 있음을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충북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청주와 충주의 두 공립보통학교와 더불어 청주 교동리(대성동)에 소재했던, ‘사립보성여학교’의 학생들 작품이 다수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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