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리뷰] 한국 드라마 속 중장년 여성 ‘서사’ 변화 - 주체적 ‘삶’으로 들어온 여성 | |
[2025. 03. 12. 발간] [충청매일 - 칼럼 - 박민정의 함께 크는 이야기]
그들은 가정 내 갈등을 해결하는 어머니이거나, 주인공의 삶에 조언을 건네는 조력자이거나 혹은 갈등을 유발하는 방해자로 기능할 뿐,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드라마는 중년 여성을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서사의 중심에 배치하며,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 연애와 인간관계를 새롭게 탐색하는 여성,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주체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엄마’에서 ‘나’로 살아가기 과거 한국 드라마에서 중장년 여성의 서사는 대체로 희생과 헌신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로 그려졌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는 중장년 여성이 더 이상 가족의 도구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가진 인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타 스캔들》(2023)의 남행선(전도연 분)이다. 남행선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이자 싱글맘으로서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연애와 감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 여성의 연애는 종종 터부시되거나 코미디적 요소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일타 스캔들》은 남행선의 사랑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톤으로 다룬다. 이는 ‘나이든 여성은 연애와 무관하다’는 오래된 통념을 깨는 서사적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이 지점에서 한계도 발견된다. 남행선이 실은 조카를 키우는 비혼 여성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결국 비혼 여성의 연애 이야기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즉, 이 드라마의 로맨스 스토리가 기혼 여성(이혼 및 사별 포함)의 사랑이 아닌, 사회적으로 허용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한 비혼 여성의 로맨스로 변주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국 드라마가 ‘엄마’의 사랑을 정면으로 다루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하는 여성 최근 드라마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서사의 중심에 서고 있다. 특히 사회적·직업적 성공을 이루고, 조직 내 리더의 위치에 오른 중년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굿파트너》(2024)는 법조계를 배경으로 중년 여성 변호사의 커리어와 개인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주인공 차은경(장나라 분)은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이혼 소송을 맡으며 일과 가정을 조율해야 하는 복잡한 현실에 직면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중년 여성 변호사가 직장과 가정, 개인적 삶을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가는지를 조명한다. 또한, 《나의 완벽한 비서》(2025) 역시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강지윤(한지민 분)은 헤드헌팅 회사의 CEO로, 5년 만에 회사를 업계 2위로 성장시킨 유능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성과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으며, 조직 내에서 완벽함을 요구하는 리더로 자리 잡는다. 드라마는 강지윤이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해가는 과정을 통해, 주인공이 직면하는 갈등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사극’ 속 여성, 재조명 최근 한국 드라마는 사극에서도 남성 인물 중심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역사 속 여성 인물의 삶과 서사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원경》(2025)이다. 이 드라마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를 배경으로, 조선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원경왕후(차주영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존 사극이 왕과 장군 같은 남성 인물의 업적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원경》은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의 주체적인 역할과 정치적 역량을 그려낸다. 원경왕후는 조선 건국 과정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만들어가는 여성이다. 그는 정치적 선택을 내리고, 왕조 교체라는 격변 속에서 독립적인 판단과 전략적 사고를 통해 권력의 중심에 선다. 단순히 남성 영웅을 돕는 조력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리더십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단순히 한 여성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덜 주목받았던 여성들의 존재와 역할을 조명하려는 최근 한국 드라마의 흐름을 반영한다.
‘노년’ 여성의 삶 《우리들의 블루스》(2022), 《디어 마이 프렌즈》(2016)와 같이 노년 여성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년 여성들이 삶의 후반기에 맞닥뜨리는 현실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으며, 《디어 마이 프렌즈》는 노인 세대 여성들의 우정과 독립적인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기존 드라마에서 소외되었던 노년 여성들의 서사를 본격적으로 조명했다. 이는 연령과 관계없이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드라마 속에서 점점 더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변화 의미와 ‘과제’ 이 같은 드라마 속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 여성의 위치가 변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여성이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드라마에서도 이들의 연애, 직업적 성공, 인간관계가 더욱 심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혼(일 것으로 쉽게 간주되는) 중장년 여성의 연애 서사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지고 있으며, 직업적 성취를 이루는 여성 캐릭터가 종종 인간미 없이 강인한 리더십을 지닌 인물로만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형화된 캐릭터에서 벗어나 다양한 여성의 삶을 세밀하게 탐구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 중장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방식은 확연히 다양해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의 서사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조명하며, 중장년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더욱 풍부하게 그려질 것을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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