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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충북연극의 대중화와 청년회의 소인극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1.22 조회수 : 70

[2025. 01. 22.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15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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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한국 최초 소인극에 대해서는 1920년 11월 25일 서울 승동교회 예배당 가극대회설, 1921년 3월 개성 고려청년회의 소인극이라는 설이 있고, 전북연극사에서는 고창청년회에서 1921년 1월 7일 신년회 중에 행한 연극을 군 단위 최초 소인극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제천의 이 소인극은 전국적으로도 가장 앞선 시기에 행해진 것으로 주목받아 마땅하다. 이후 충북지역의 소인극 기록으로는 1921년 4월 27일 청주금융조합 총회 이후 조합원과 내빈을 위해 앵좌에서 공연한 것인데, 이것이 지역 최초 실내극장에서 행해진 소인극이었다. 이어 1921년 5월 29일부터는 6월 1일까지 나흘간 괴산청년회가 청년회관에서 미신 타파와 풍속개량 목적으로 개최, 매일 밤 7,8백명의 관람자가 입장하여 초유의 성황을 이룬 이 소인극은 단발성이 아닌 연속 공연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청년회의 소인극 활동은 극장이나 청년회관, 회의 소재지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었다. 순회연극단을 꾸려 장터를 비롯한 지역 내 곳곳을 찾았고,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활동했다. 이른 시기 순회연극단 활동 중 규모가 컸던 것은, 임성록을 단장으로 10명 규모의 청주청년회 소인극단이 꾸려져 ‘三人義理’란 연제로 1921년 8월 17일부터 9월 4일 일정으로 충북 전 지역과 충남 일대 14개 지역을 공연한 것이다. 이들의 순회공연은 각 지역 청년회의 연대를 전제로 한 것임은 공연 전에 순회 연극단을 우해 해당 지역 청년회가 마련한 환영회에서 잘 드러난다. 이 기회를 통해 대본을 공유하고, 서로의 연극에 대해 비평적 견해도 나누었다. 물론 지역 계몽을 위한 야학 설립 등의 현안, 나아가 식민지 청년으로서 조선의 독립에 대한 고민도 공유했을 것이다. 특히 일제의 경찰과 충돌이 잦았던 제천청년회의 소인극에는 수차례 공연 불허 결정이, 보은청년회는 옥천지역 공연 중에 중지 명령과 함께 극단 해산명령이 내려진 사실도 확인된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1920년대 초에 시작된 그들의 소인극 활동은 1937년 일제 탄압이 본격화되기까지 그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오늘날 ‘찾아가는 문화예술 공연’의 효시가 된 셈이다. 그들은 지역의 계몽과 발전이라는 공공적 목적을 실현코자 기꺼이 연극적 양식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충북 사람들은 연극의 대중화, 일상 속 연극을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 후 오랜 시기까지 지방연극 중에는 ‘충북이 최고(경향신문, 1976.9.14.)’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그 근원도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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