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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전등과 충북 최초의 앵좌극장 설립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4.09.18 조회수 : 16

[2024. 09. 18.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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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2월 27일, 청주전기회사가 설립되고 제반 기초공사, 전주와 전선 가설 등의 작업이 속속 진행되었다. 이 준비 과정에서의 정점은 1,200여 관(4.5톤) 중량의 발전기를 청주까지 운반하는 일이었다. 일본에서 부산까지는 배로, 부산에서 조치원역까지는 철도로, 다시 육로로 청주까지 옮겨오는 것이었다. 난제 중의 난제는, 청주의 관문이었던 조치원에서 청주로 들어오기 위해서 120간(약 220미터)의 나무다리(木橋), 미호천교를 통과하는 일이었다.

언론은 조치원역에서 청주로 발전 기계를 옮긴 대역사의 날을 1913년 6월 7일로 기록하고 있다. 충북도청 기수(技手)의 총지휘하에 도청 소속 인부(工夫)와 청주전기회사 사원이 총동원되었다. 특별히 중량물을 실을 수 있는 전용 수레가 준비되고, 소 7마리와 70여 명의 인부가 함께 끄는 방법으로 이 ‘미호천교’를 건넜다고 했다. 철도 연선에서 수리 떨어진 지역까지 이러한 중량물의 운반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고 당시의 매일신보는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당산 발전소는 제 모습을 갖추고, 시험 운전과 체신국 검사를 거쳐 1913년 7월 17일 점등을 개시한다. 하지만, 6년 가까이 우렁찬 소리를 토한 당산의 발전소는 자금난 등으로 1919년 3월 대전전기회사에 합병된다. 회덕의 시골 마을이었던 대전은 경부선의 주요 역으로 대전역이 설치되고(1905.1), 호남선 분기역(1912.5.) 역할까지 하면서 중부권 최대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청주의 전기 공급은 대전에 소재를 둔 이 대전전기회사의 조치원 발전소에서 송전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그해 9월 1일 영업소까지 조치원으로 이전하면서 발전소도 동시에 폐지되었다. 물론, 이후의 충북 도내 각 지역의 송전은 이 대전전기회사가 전담하게 된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청주의 전등은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밤의 ‘문화’를 바꿔 놓았으니, 실내극장의 설립을 촉진한 것이다. 서구적 개념의 근대 극장은 야외에서 실내로 들어와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조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902년 한국 최초의 서구식 극장인 협률사가 개관한 지, 12년 만인 1914년 청주에서도 일본인에 의해 ‘덕영좌’가 문을 연다. 그런데 이 극장은 개인 자본으로 설립되어 시설이 보잘것없었고, 공연 내용도 일본인 취향이어서 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16년 12월 15일, 자혜의원 근처(현재 남사로)에서 드디어 ‘앵좌극장’이 문을 연다. 일제의 군국주의가 노골화되던 시점인, 1937년 9월 25일 철당간 옆 ‘청주극장’으로 확장 이전하기까지 20여 년간 청주시민의 극장이자, 충주중앙극장이 1930년 언론에 처음 등장하는 시기까지 도내 유일한 극장으로 ‘앵좌시대’를 열게 된다. 이곳에서는 연극, 무용, 가극, 클래식, 대중음악 등의 공연, 서양과 조선의 영화가 상영된다. 이 앵좌극장은, 낮의 노동과 분리된 밤의 문화, 고정된 공간에서 행해지는 일상적 여가문화의 새 장을 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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