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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재촉이 아니라 기다림 새글핫이슈
기고자 : 배명순 수석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2.09.23 조회수 : 1,271

[2022. 09. 15.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배명순의 the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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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아들과 자전거 여행이다. 올해 만 11세인 아들은 지난 5월초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조급한 마음에 필자가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웠던 방법으로 가르쳐 봤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운 아들은 지나친 조심성 때문인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문제의 해결은 의외의 곳에서 찾았다. 아내에게도 자전거를 가르쳐 줄 요량으로 찾아간 자전거 대여점에서 사장님이 아들에게 적합한 자전거를 추천해주었다. 아들은 이 자전거로 불과 30분 만에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아빠의 조급한 마음이었다. 조급함 때문에 배우기용으로는 너무 큰 자전거를 사줬고, 빨리 배우게 하기 위해 어른의 방식으로 가르쳤던 것이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실패가 곧 그 사람이라는 가혹한 평가에 초보자는 긴장한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편법을 쓰기도 한다. 남의 것을 내 것인 양 훔쳐오기도 한다. 요즘 정치적으로 시끄러운 표절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어쩌다 한번 성공한 사람은 그 다음이 더 큰 부담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거나,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학력과 직업이 좋을수록, 자기 노력으로 성공한 자수성가형일수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더 크다. 왜 그런 것일까?

필자의 직장인 충북연구원은 박사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실패에 대한 압박이 매우 심하다. 박사학위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젊은 박사답게 새롭고 창의적인 무언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그저 사회 초년생일 뿐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해서 박사학위는 대형 자동차면허와 같다. 1, 2종 보통 면허로는 운전할 수 없는 트럭이나 버스를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일 뿐,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대형 자동차로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서, 통행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운전 실력이 쌓일 때까지 실패의 시행착오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실패의 과정을 기다려주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도 뭔가 보여주려고 애쓰기도 한다.

이렇게 실패를 기다리지 못하는 풍조는 시대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빨리 성장하는 분야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편법과 눈가림, 그리고 심각한 정신적 압박감이 사회와 개인을 병들게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명문대학생들의 자살은 실패를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준다.

중학교에서 줄곧 상위권 성적이었던 지인의 아들은 고등학교에서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부모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걱정하는 부모에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말했지만, 격려가 필요한 건 부모가 아니라 아들이다. ‘너는 실패한 인생이 아니고,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라고 어른들이 말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한 달 동안 훈련을 마친 아들은, 6월에 239km의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2박3일에 거쳐 무사히 마쳤다. 부모가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다. 우리에겐 기다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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