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리뷰] 또 한 번의 좌절 | |
[2022. 11. 23. 발간] [충청리뷰 - 칼럼·의견 - 오늘의직언직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 소식을 짧은 속보로 접한 순간 나는 의외로 담담했던 나 자신에게 내심 놀랐다. 애도기간이 훌쩍 지났지만,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생각해 봐도 그랬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어디선가 어떤 이유로 매달 아니, 매주 반복되는 사망사고로 놀라거나 슬픈 마음이 무뎌졌을까? 그냥 그 사실이 너무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많은 희생자들의 가슴 아픈 소식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을까? 콕 찍어 하나의 이유로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만, 소식을 듣자마자 문득 참사 이후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머릿속에 그려졌고, 그 일들 하나하나가 너무 진절머리 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던 일들이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다. 며칠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용산 경찰관의 죽음까지도.. 어쩜 이리 똑같을까,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말본새도 같고, 희생자들을 대하는 로봇같은 사과도 같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가짜뉴스도 같고, 희생자를 폄훼하는 말들까지 똑같다. 매 시간 많은 언론에서 쏟아져나오는 전문가들의 얘기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이 어이없는 참사의 끝이 어떻게 될지 짐작되는 이 현실에 좌절할 수밖에. 사고 직후 압사재난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이 없다고 지적했지만, 대규모 재난에 대한 정부 대응 매뉴얼은 없어도 알아서 잘들 지킨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하다. 이번 참사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규명과 책임소재, 대응책들은 아직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우리 사회가 재난대응과정에서 항상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못난 점 세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사과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무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그제야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다. 왜? 사과하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식으로라도 사과를 하면 잘못을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인정했으니 책임지라고 한다. 그래서 일단 내 담당이 아니고, 나는 모르는 일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발을 빼고 보는 것이다. 일단 발뺌 이후, 내가 책임지지 않을 이유만 아주 열심히 찾는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부터 인파로 인한 재난이란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까지. 두 번째는 일어나지 않는 위험은 위험이 아닌 사회이다. 일어날 가능성만으로는 아무도 움직여 주지 않는다. “사고 날 거 같아요”라는 요청에 대응했다가 실제로 사고가 나지 않으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말 한마디에 아무도 나서질 않는다. 이번에도 사고 발생 이전까지 112에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11번이나 됐지만 발생한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무시됐다. 어딘가 무너지고 누군가 죽고 다쳐야 그게 위험인 것이다. 세 번째는 희생자에 대해 막말하고 막 대하는 사회이다. 놀러 간 사람은 죽어도 된다니, 희생자 명단을 동의도 없이 공개하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화가 나지만, 경북 봉화 광산 지하 190m 갱도에 고립됐다 9일 만에 무사히 구조된 분을 떠올렸더니 좀 가라앉았다. 사망자가 많고 적음에 따라 나이가 적고 많음에 따라 슬픔의 크기가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재난이 발생하고 치유되는 과정에서 슬픔속에 감동도 있고 희망도 같이 있다. 이번 참사의 슬픔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 안전한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재난은 또 준비된 것처럼 보이는 우리 사회의 약점을 찾아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 원문보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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