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불필요한 짐 | |
[2022. 11. 10.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배명순의 the 생각해보기]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라이더)들에게는 여러 가지 꿈이 있다. 그것은 처음엔 평지를 잘 타는 것이었다가, 조금 더 멀리 가는 것, 힘들다는 고개를 올라가는 것, 그리고 4대강 자전거길 종주로 이어진다. 필자도 지난해 아침마다 피반령, 청남대, 대청댐을 들렀다 오는 40~50km의 출근길로 체력을 다지다가 금강자전거길(146km), 오천자전거길(105km) 종주에 성공했다. 올해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좀 더 큰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바이크매거진이라는 자전거 전문 잡지에서 만든 백두대간 종주였다. 지리산 자락(구례)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좌우로 넘나들며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까지 가는 거리 1천200km, 상승고도 2만5천m의 험난하고 긴 길이다. 필자는 제주도에서 출발하기에 제주~목포, 목포~구례의 길이 추가되었다. 이미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한 몇 사람들의 유튜브를 시청하고 준비물을 챙겼다. 자전거와 준비물 못지않게 마음도 단단히 먹었다. 제주~목포~담양~구례로 이어지는 이틀의 여정은 무난했다. 많은 짐(텐트와 침낭, 취사도구, 노트북, 옷, 각종 장비 등)을 싣고 영산강자전거길을 완주하고 구례까지(200.6km) 갈 때까지만 해도 이대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텐트 야영의 낭만을 즐기고, 노트북으로 매일 일정을 정리하고, 간간이 글쓰기도 하면서 말이다. 길에서 만난 라이더들이 파이팅을 외쳐 줄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뿌듯했다. 그런데 이런 낭만은 백두대간 첫 구간인 지리산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맨 자전거로도 오르기 힘든 성삼재와 정령치를 25kg이 넘는 짐을 싣고 오를 수 없었다. 경사도가 20%를 넘는 구간도 있어서 타는 것은 고사하고 끌고 가기도 버거웠다. 걷는 보행자보다도 느렸다. 성삼재 정상의 휴게소에서 사람들의 ‘대단하다’라는 격려와 칭찬이 더 이상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문제였다. 무거운 짐 때문에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해발 1천의 정령치에서 120m의 남원까지의 길고 가파른 내리막길은 무거운 짐을 실은 자전거가 버티기엔 무리였다. 결국, 남원에서 1박 하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짐만 남기고, 불필요한 짐(야영 장비, 노트북, 책 등)은 집으로 배송하고 말았다. 배송한 짐의 무게만도 17kg이 넘었다. 가벼워진 무게만큼 힘이 덜 들었고, 지쳐서 보이지 않았던 백두대간의 멋진 가을 단풍들도 눈에 들어왔다. 마주 오는 라이더들과 인사도 나눴고, 과수원에 들러 사과도 얻어먹었다. 처음 생각했던 야영의 낭만은 잃었지만, 한결 여유롭고 주변 경치도 즐길 수 있었다. ‘대단하다’라는 감탄의 시선은 받지 못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화진포까지 15일, 거리 1천543km, 상승고도 2만6천135m의 대장정을 무사히 끝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여정도 비슷하다. 우리의 삶은 부러울 것 같고, 낭만스러운 짐들로 가득하다. 좋은 아파트와 자동차, 자녀의 학력, 많은 연봉, 더 많은 돈과 이를 위한 재테크 등이 삶의 무게를 더한다. 이 무거운 짐들을 싣고 사느라고 가정이라는 아름다워야 할 경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서 가볍게 살아야 길게 갈 수 있고, 진정으로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배운다. ↓ 원문보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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