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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구전가요 ‘양산가’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5.04.30 조회수 : 98

[2025. 04. 30.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 오피니언 128번 게시글 내용과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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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접할 수 있는 ‘양산가’는 크게 구전가요와 후대 식자들이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상상력을 보태 지은 한시 계열이 있다. 우선, 구전가요 두 편을 보기로 한다. 영동 송호국민관광지 노래비에 실린 양산가부터 보면 다음과 같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모링이 돌아서 양산을 가세./난들 가서 배 잡아타고/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세/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잉어가 논다 잉어가 논다/양산 창포장에 잉어가 논다/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자라가 논다 자라가 논다/양산백사장에 금자라가 논다/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장게가 논다 장게가 논다/양산수풀 속에 무구리 장게가 논다//"금강변 모링이(모퉁이)를 따라 휘돌아야만 닿는 양산, 난들과 양산백사장 등 지역적 기표가 충만한 이 노래는, 반복된 구절이 전해주는 리듬감이 특징이다. 구전민요로서 지금까지 전해진 하나의 비결이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가요는 1930년대 김태준이 직접 영동을 답사하고 기록해 둔 것이다. 1930년 들면서 국문학사 기술도 본격화된다. 이 과정에서 문학사가들은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지리서, 조선의 학자들 문집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양산가’의 존재를 알았을 것이고, 그 실체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그중에서 양산가의 본고장인 영동을 직접 찾은 이가 국문학자 김태준(1905∼1945)이었다. 국문학사 기술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그는 경성제대 강사 시절 방학을 이용하여 영동을 답사했다. 그 내막이 조선일보 1935년 2월 16일자에 실려 있다. 영동역에서 30리 길을 걸어 양산면을 찾았고, 면장 이명주 씨를 만나 양산가에 관해 묻는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서 이 노래가 불렸다는 것,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이 노래가 ‘걸작’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는 것, 덧붙여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보아 김흠운이 이곳에서 전사한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노래 실체까지는 확인하지 못한 그는 인접한 양강면 묵정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비로소 명창 강우성 씨로부터 ‘양산가’를 듣게 된다. 그 가사를 신문 지상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가자 가자 양산 가자 모롱이 돌아 양산가자/난들 가서 배잡어 타고 모롱이 돌아 양산 가자/강선대 우에서 님뫼시고 놀다가 배를 타고 양산가자,/ 靑絲燭籠 불 발켜 들고 情든 님 뫼시고 양산가자,/ 양산장터에 술막을 짓고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린다,/ 이산 저산 兩山 중에 별패가 낫다고 금산인가금산장터서 수레를 타고 모롱이 돌아 양산 가자//"노래에서는 무거움과 함께 어떤 간절함이 느껴진다. 젊어서 죽은 김흠운과 얼굴이 희고 손가락이 길었다는 그의 아내도 떠오른다. 역시 난들이며 강선대가 말해 주듯 이 지역 사람들이 아니면 쉽게 부를 수 없는 가사로 되어 있다. 노래에 대한 감상도 적어 놓았다. 곡조가 상당한 예스러움을 품고 있으며, 마치 김흠운의 시신을 모시고 부르짖던 해로가(薤露歌)와 같다고도 하였다. ‘해로가’란 무엇인가, 사람 목숨이 부추 위의 이슬과 같아 쉽사리 말라 없어진다는 내용의 가사와 그에 상응하는 구슬픈 곡조로 된 노래로, 주로 상여가 나갈 때 불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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