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타임즈] 개전(開戰)은 쉬우나 종전(終戰)은 어렵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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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우리의 역사에서 고조선 시대부터 삼국 간의 전쟁, 거란과 몽골의 침입,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는 수없이 전쟁의 참화를 겪어왔다. 평화의 시기가 수십년마다 반복된 전쟁과 전쟁 사이에 일부 있었다고 할 정도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흔히 종교와 민족, 이데올로기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토와 자원, 안보와 패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있다. 상대의 힘과 의지를 잘못 판단하는 오판도 전쟁을 부른다. 전쟁을 시작하는 지도자는 대개 빨리 끝낼 수 있다고 믿지만 역사가 보여주는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기가 어렵다. 희생과 비용 때문에 쉽게 물러설 수 없고, 조금만 더 싸우면 유리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종전을 방해한다. 종전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우위든 더 싸워도 승산이 없다는 균형이든 힘의 관계가 확인되어야 한다. 협상 상대가 명확하고 전쟁을 계속할 기대이익이 사라져야 하며, 합의를 지키게 할 신뢰와 강제력도 필요하다. 전쟁의 목적이 변하거나 확대되면 이러한 조건을 갖추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한국전쟁이 그랬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1년여 만인 1951년 7월 정전협상에 들어갔지만 협정을 맺는 데 다시 2년이 걸렸다. 군사분계선과 포로송환 등을 둘러싼 이해가 충돌하는 동안에도 희생은 이어졌다. 1953년 7월 총성이 멈췄지만 그것은 종전이 아닌 정전이었다.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에는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란 전쟁에서 트럼프는 이란의 핵무장 저지와 탄도미사일·해군력 약화, 대리세력 지원 차단 등을 전쟁의 명분과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정권의 향방과 호르무즈 해협, 경제적 압박까지 거론되며 전쟁의 목표와 종전 조건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목표가 확대될수록 무엇을 얻어야 전쟁을 끝낼 것인지도 불분명해진다. 더구나 어느 한쪽이 상대를 굴복시킬 만큼 압도하지도, 서로 더 싸워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지도 못한다면 전쟁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여러 이해당사자가 얽히고 서로에 대한 신뢰마저 없다면 협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시작할 때보다 끝내기 위한 조건이 훨씬 복잡해진 것이다. 문제는 그 전쟁의 불똥이 우리에게 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과 자유로운 항행을 명분으로 한국의 군사적 기여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한국의 군사적 개입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이례적으로 한국어로까지 내놓았다. 목적과 출구가 불분명한 전쟁을 앞에 두고 한국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과 후유증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파병 여부를 판단할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미국의 강요도, 이란의 위협도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필요한가, 어디까지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에 대한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 동맹은 중요하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순간 그 이후의 상황까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전쟁의 시작은 한순간의 결정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종전에는 상대가 있고 이해관계가 있으며, 전쟁이 만들어 낸 새로운 원한과 계산도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교훈도 그것이다. 전쟁에 들어가는 문은 넓어 보여도 다시 나오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좁고 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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