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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과 충북의 대응 ① 통합설과 청주의 위기감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6.05.20 조회수 : 43

[2026. 05. 20.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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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 계획이나 이와 관련한 관료의 무책임한 말은 촉각을 곤두세운 해당 지역에서는 ‘나비 효과’가 되어 나타났고, 이에 유지 특히 상공업자를 중심으로 명운을 걸고 이 문제에 대응해 나갔다. 도청을 옮겨간다는 소식만으로 예정지에 활기가 도는가 하면, 내주어야 하는 쪽에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1920년대 들어 강원과 경남이 이 문제로 홍역을 앓았고, 상대적으로 면적이 좁은 충청남북도는 양도의 통합 문제와 소재지 이전 문제가 얽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었다.

 물론, 충청권 여러 지역의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지만,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통합하느냐, 통합 후 도청소재지가 어디로 결정될 것인가가 논란의 핵심이 되었다. 이 문제는 1920·30년대 충청 지역에서 지속적인 이슈가 되었지만, 특히 충북 지역에서 수면 위로 크게 떠오른 시기는, 1924, 1926, 1929, 1931년임을 당시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24년 9월 총독부의 ‘지방 행정 정리’에 따라 충청남북도가 합병된다는 소문이 확산, 대전과 조치원에서 도청 유치 운동이 격렬해지자 청주에서도 이를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 나간 것이 첫 사례로 확인된다. 1924∼5년 무렵에는 ‘대정 16년’(1926)에 양도의 통합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마침, 1926년 1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귀임 도중 조치원 지역 기자에게 ‘지방 행정 관계상, 행정구역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고 한 말이, 양 도의 합병과 조치원으로 도청 이전설로 비약하여 조치원 땅값이 폭등하고 시가지가 활기를 띠기도 했다. 1929년에는 1월 23일 경성의 한 조간신문이 총독부 정무총감 이케가미 시로가 발표한 ‘시정방침’에 근거하여 ‘충청남북도는 타 도에 비하여 면적이 협소하여 이를 합병하고 충청도라는 새 도명을 부여하여 대전에 소재지를 둔다’는 내용을 보도하여 지역사회에 파문을 불러왔다.

 이러한 사안이 쟁점이 될 때마다 청주에서는 시민대회를 개최하여 상경 위원을 선발하고, 총독부를 방문하여 진정을 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총독부로부터 원하는 확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1931년에 들면서 청주의 위기감은 한층 더해가고, 그만큼 시민운동도 확대되고 조직화한다. 도청소재지를 고수하려는 공주와 옮겨가려는 대전, 천안, 조치원의 치열한 ‘싸움’ 가운데 31년 1월, 총독부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충남도청 이전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청주 면장은 도청 이전에 수반하여 조만간 행정구역 변경, 즉 충남북이 합병에 봉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충남도의회로부터 전달받는다. 그간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이 충남북 합병을 염두에 두고 결정되었다는 설이 신빙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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