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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일제강점기 충남북 병합과 도청소재지 이전설 새글핫이슈
기고자 : 임기현 연구위원 신문사 : 충청매일 게시일 : 2026.04.22 조회수 : 27

[2026. 04. 22. 발간]

[충청매일 - 오피니언 - 칼럼 - 지역사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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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일신협약(1907) 이후 일제가 설치한 통감부의 통감이 조선의 황제를, 각 부처의 일본인 차관이 조선인 대신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듯이 관찰부에 배치된 일본인 서기관은 통감부와 소통하며 지방행정을 쥐락펴락했다고 할 수 있다. 

 청주는 도청(관찰부) 소재지가 되면서 한 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다른 군과 큰 격차를 벌리며 성장한다. 1920년대 초반 청주군의 인구는 15만 명 내외로 10만 명 규모의 공주나 대전과 비교되지 않았고, 서울·경기권을 포함해서도 경성부 28만을 제하고는 삼남의 웅주(雄州)답게 제1의 인구 규모를 자랑했다(경성상업회의소, 『조선인구표』, 1923).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24년 무렵부터 청주 위상에 위협이 되는 총독부발 풍문이 들려온다. "충청남북도 합도설과 도청소재지 이전"이 그것으로 청주는 이 때문에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도청 청사의 현 문화동 신축 이전 시까지 줄곧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그중에 언론에 크게 오르내린 몇 차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확인되는 시기는 1924년 9월이다. 총독부는 통치 효율성을 목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행정정리’를 기획했다. 이와 관련한 ‘풍설’이 청주에도 전해졌으니, 충청남북도를 병합하여 충청도로 환원하고, 도청소재지도 이에 걸맞게 옮긴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에 크게 당황한 지역은 충북과 충남의 도청소재지가 있던 청주와 공주였다. 통합 충청도의 도청소재지로는 경부철도 개통으로 급성장하고 있던 대전, 청주와 공주의 관문 역할을 한 조치원이 오르내렸다. 사수하려는 청주와 공주, 유치하려는 대전과 조치원(후에 천안까지 가세)에서는 지역 유지를 중심으로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충북 사람들은 이전 후보지가 모두 충남에 속하는 지역이라 자칫 도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까지 느꼈다.

 그 무렵 경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졌다. 1910년대 후반부터 도청소재지로는 궁벽하니 부산으로 옮겨간다는 풍문이 돌았다. 진주 사람들은 이전 반대 운동과 함께 진정(陳情) 위원을 선발하여 총독부에도 보냈다. 총독부는 뜬소문이라 일축했다. 그러다가 총독부는 전격적으로 1924년 12월 부령(府令) 발표로 부산으로의 도청 이전을 공식화하고, 1925년 4월 이청(移廳)을 완료한다. 풍문이 현실이 된, 특히 진주 지역의 위축과 주민들의 허탈감을 전해 들은 청주 사람들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으로 총독부의 행정 개편, 그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공론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은 지역 간 갈등도 초래했다. 충남북 백성들은 고려 ‘양광도’ 이래 수백 년간 충청도란 하나의 도명으로 다툼 없이 살아왔다. 1895년 충청도에서 남북이 분리된 이래 각기 다른 정체성이 생겨난 까닭일까. 충북의 주민들은 원하지 않은 도의 병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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