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일구어 온 땅과 보금자리를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그 자리를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길을 만들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9부 2처 2청의 중앙정부기관을 옮기기 위한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 3월 18일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정도시로 칭함)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공식적인 정부의 정책으로 추진되게 된 행정도시는 ‘그 명칭·지위 및 행정구역 등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는 행정도시 건설 특별법 제5조의 규정에 의하여 행정도시를 법인격을 갖춘 자치단체로 만들기 위한 법률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 후 행정도시 건설청이 들어섰고 국민공모를 통해 ‘세종’이라는 명칭도 정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지위나 종류 및 구역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충청권 출신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에 발의된 ‘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 17대 국회시기였던 2007년 6월, 2008년 2월 등 2차례나 무산되었고, 제18대 국회가 개원된 이후 지금까지 9개월여 표류하고 있다. 지난 2월 9일 행정안전부의 주최로 국회에서 전문가 및 지역대표 6명을 공술인으로 지정, 토론을 벌였지만 그것도 요식행위 및 김 빼기 주장들의(기능이 아닌 인구개념을 고집하는) 잔치로 끝났다. 다행히 제1야당인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이 공동 발의하여 오는 4월에 개회되는 임시국회에서 법률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확약하고 있으나 이것도 그때 가봐야 한다.
행정도시가 기구한 숙명을 타고나 정치적 사생아가 된 채 모진풍파를 맞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희망의 청신호로 등장한 행정도시가 국적불명의 이방인 신세가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주요한 것으로 국정책임자들의 철학 빈약 내지 부재, 정당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수도권의 소지역주의, 충청권의 결속부족 등을 들 수 있다. 국정최고책임자는 국가가 어떤 길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하고, 그 철학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으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행정도시 건설은 그러한 철학 속에서 태어나지 못하였다. 국정최고책임자의 계속적인 방치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것이 행정도시 건설이 갖는 태생적 한계이다.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일구어 온 땅과 보금자리를 버리고 고향을 떠났다. 그 자리를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길을 만들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9부 2처 2청의 중앙정부기관을 옮기기 위한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