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개발연구원

지나가다 글 읽는 소리가 들리므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 그 글이 아주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안나는구나.” 하인이 올려다보며 “부학자 재적극박 어쩌고저쩌고 나으리가 평생 맨날 읽으신 것이니 쇤네도 알겠습니다요. 나으리가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가?” 김득신은 이제서야 1억1만3천 번 읽었던[백이전]인 것을 알았다. 하인도 지졉게 들어 줄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느 해 한식날 하인과 길을 가다가 5언시 한 구절을 얻었다 그 구절은 ‘마상봉한식’(말 위에서 한식을 만나니)이었다. 그가 한참동안이나대구(對句)를 찾지 못해 끙끙대자 하인이 이유를 묻길래 대구를 못 찾아 그러노라 했더니 하인 녀석이 대뜸 ‘도중속모춘‘을 외치는게 아닌가. 즉 “말 위에서 한식을 마나니, 도중에 늦은 봄을 맞이하였네!!”로 그럴싸한 구절이 되었다. 깜짝 놀란 김득신이 말에서 내려와 “네 재주가 나보다 나으니 , 이제부터 내가 네 말구종을 들겠다.” 하니 하인 녀석이 씩 웃으며 “나으리가 날마다 외우시던 당시(唐詩)가 아닙니까?”하였다.

또 한 번은 그가 친구들과 압구정에 모여 시를 짓고 논 일이 있었다. 그는 하루 온종일 생각하다가 날이 다 저물어서 “나는 겨우 두 구절을 얻었네만 아주 훌륭하다네.”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뭔가?”친구들이 들어보자고 재촉하자 김득신이 입을 열었다. “삼산은 푸른 하늘 밖에 반쯤 떨어지고, 이수는 백로주에서 둘로 나뉘었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하니 친구들이 “그건 이백의 시 [봉한대]가 아닌가?”하며 웃었다. 그러자 김득신은 풀이 죽어 “천년 전 적선이 나보다 먼저 얻었으니 석양에 붓 던지고 서루를 내려오네.”라고 탄식하니 듣던 친구들이 웃다가 쓰러졌다. 하도 많이 읽어 자신이 지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타고난 둔재임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열정으로 당대 문장을 이루었던 김득신의 이야기는 세월을 넘어 가르치는 바가 적지 않다.

* 김득신의 일화 부분은 정민 교수의 저서 [미쳐야 미친다](푸른 역사)에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