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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8.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가발전과 경제발전의 장애물 : 민족주의와 부족주의의 충돌 새글핫이슈
연구진/발행처 : 임형백 발행일 : 2022.05. 보고서번호 : 08 조회수 : 1,265

 [초록]


민족주의에 대하여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근대주의자는 민족과 민족주의를 18세기의 산물로 본다. 원초주의자는 민족과 인종적 민족 공동체가 역사의 자연스러운 단위이고 인간 경험의 통합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와 민족국가는 엄연한 실체가 되었다. 반면 아프리카는 지리적 특성과 사회적 요인 등으로 인하여 서구식의 민족과 민족국가가 성립되지 못했다. 19세기 유럽식민주의가 아프리카를 침략하기 이전에, 아프리카에는 공식적이고 경계가 뚜렷하게 정해진 국가는 없었다. 그러던 중 베를린회담(1884-1885)에 참가한 14개 국가들은 아프리카에 인위적으로 국경선을 획정하였다. 아프리카 대표는 참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프리카의 부족, 인종, 종교의 분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결정된 식민지 분할이었다. 아프리카는 40여개의 국가로 나눌 수 없는 너무나도 다양한 곳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베를린회담의 결과 이전까지 국경선이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던 1만 여개의 부족이, 갑자기 40여개의 국가의 국경선에 갇히게 되었다. 하나의 부족이 여러 나라의 국민으로 나뉘었고, 서로 사이가 나쁜 다수의 부족이 하나의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 나이지리아는 400-500개의 부족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후 식민지지배국가들은 아프리카의 피식민지국가들에 토착제도와는 상관없는 자신들의 제도를 이식하였다. 그리고 피식민지국가들의 저항을 약화시키고 지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분할통치’를 실시하였다. 독립 이후에 특별한 대안은 없었고, 1963년 아프리카통일기구는 식민지 시대 국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지 지배국가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국경선 안에서 새로운 국가와 정체성을 형성할 수 밖에 없었다.